언론보도

[더나은미래] [다이내믹로컬] 여가생활 부족·부실한 밥상… “우리 동네 복지 빈자리, 주민이 직접 채워요”

2019-12-02

 

[다이내믹로컬] ②복지 사각지대 이웃 보듬는 풀뿌리조직
 

에버팜, 지역 현실 마주하며 주력 활동 바꿔
장애인 여가 지원·아이들 식생활 교육 진행
풀뿌리희망학교, 어르신 위한 ‘안심밥상’ 운영

 

공공복지 서비스의 허점, 풀뿌리조직서 해결
1년 단위 공모사업 한계… 꾸준한 지원 필요


지난 19일 전북 완주군 화산면의 한 텃밭 정원. 채소와 꽃이 한데 어우러진 이곳에 지역에 사는 장애인 11명이 모였다. 이들은 지난 6월부터 한 달에 한 번
에버팜협동조합(이하 에버팜)이 운영하는 텃밭 정원에 모여 채소와 꽃을 가꾸고, 직접 재배한 작물로 함께 점심도 만들어 먹는다.
이날은 직접 키운 메리골드 꽃송이를 넣은 양초를 만들었다. 최숙(36) 에버팜 대표는 “꽃을 심는 것부터 따고 말리는 일까지 모두 이 친구들이 직접 했다”며
“농업을 접목한 다양한 활동을 경험해볼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있다”고 했다.

 

“동네 사정 뻔히 보이는데 어떻게 손 놓고 있나요”
 

에버팜은 지역에 거주하는 조경 전문가들이 ‘친환경 텃밭 정원 디자인 컨설팅’을 해보자며 설립한 협동조합이다. 하지만 지역 현실에 눈을 뜨면서 주력 활동이 완전히 바뀌었다. 최 대표는 “텃밭 정원이 생기니까 동네 어르신들이 ‘먹는 것도 심어보라’며 토종 채소 씨앗을 가져다주셨다”면서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다들 외롭고 무료한 나날을 보낸다는 걸 알게 됐고, 이분들과 함께 정원에서 자란 꽃과 허브로 비누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는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어르신들을 돕다 보니 자연스럽게 동네 아이들도 눈에 들어왔다.

최 대표는 “완주가 ‘로컬푸드 1번지’인데 정작 우리 동네 아이들은 가정 형편이 어려워 음식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매우 부족한 상황이었다”며
“아이들과는 텃밭에서 키운 채소로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먹어보는 식생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장애인과 함께하는 프로그램도 최 대표가 지역 장애인들의 열악한 문화 생활 여건을 눈으로 확인하고서 기획했다. 최 대표는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준비하며
지역 장애인 작업장으로 실습을 나갔다가 장애인들이 집과 작업장, 교회, 복지관 빼고는 마땅히 갈 곳이 없다는 데 충격을 받았다”며 “이들이 주체적으로 문화 생활을 즐길 기회를 마련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웃의 열악한 상황을 알아버린 이상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지역 내 복지 문제, 공공 서비스로는 해결 역부족


 

주민들이 지역의 복지 사각지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이유는 공공이 제공하는 복지 서비스의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전남 나주시 문평면의
주민 조직 ‘풀뿌리희망문화학교’가 동네 어르신 건강을 챙기기 위해 여러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도 공공복지 서비스의 허점을 메우기 위해서다. 청소년교육 분야에서
일하던 나성운(55) 풀뿌리희망문화학교 대표는 어느 날 어머니댁으로 잘못 배달된 도시락 뚜껑을 열어보고 동네 어르신 복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나 대표는 “지자체에서 혼자 사는 어르신들께 제공하는 도시락이었는데,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질 나쁜 반찬이 들어 있었다”며 “제대로 된 밥상을 차려드리자는 생각으로 어르신댁에 반찬을 가져다 드리는 ‘안심반찬’ 프로그램과 마을회관에 모인 어르신들께 갓 만든 음식을 대접하는 ‘안심밥상’ 프로그램을 시작했다”고 했다.

 

나 대표가 특히 강조하는 건 ‘안심밥상’이다. 올해는 문평면 마을 31곳 중 5곳을 선정해 어르신들이 직접 고른 메뉴로 밥상을 차리고 있다. 필요한 음식 재료를 사서 마을회관에 가져다 주면 마을 주민, 풀뿌리희망문화학교 봉사자와 어르신들이 함께 음식을 만들고 상을 차린다. 그는 “홀로 계신 어르신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이웃들과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유대감을 형성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타지에 있는 자식의 빈자리를 가까이 있는 이웃이 채우고 있다”고 했다.

 

풀뿌리희망문화학교는 문평면사무소 안에 조성된 ‘작은 도서관’에서 어르신 대상 한글 교실도 운영하고 있다. 나 대표는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나서니
다른 문제가 눈에 띄더라”면서 “어르신 가슴에 맺힌 배움의 한(恨)을 풀어 드리기 위해 한글 교실도 열게 됐다”고 했다.

현재 학생 수는 10명 안팎이지만 희망자는 훨씬 더 많다. 문평면사무소에서 멀리 떨어진 마을의 어르신들도 참여 의사를 밝혔지만, 이동 수단이 마땅찮아 성사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 대표는 “대중교통도 없고, 주변 석재 채굴장을 오가는 덤프트럭과 화물차가 하루 800대 가까이 다니는 데다 인도(人道)가 없어서 가까운 거리여도
어르신 혼자 오가는 건 위험천만한 상황”이라며 “어르신들을 안전하게 모셔오고 모셔다 드릴 차량을 마련하는 게 큰 숙제”라고 했다.

풀뿌리 조직의 지속 가능한 활동 위해선 외부의 꾸준한 지원 필요

 

또 다른 숙제는 활동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지역의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서는 꾸준히 활동을 이어가며 점진적으로 성과를 내는 게
중요하기때문이다. 나 대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드림위드 사업에 선정돼 어르신 대상 활동을 꾸준히 진행할 수 있었지만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불안한 마음이 든다”며 “지자체를 비롯해 지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선
주민들을 따뜻한 시선에서 바라보며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사회 주체가 늘어났으면 한다”고 했다.

 

에버팜도 지역 주민들과 돈독한 관계를 쌓으며 지역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최 대표는 “올해 드림위드 사업 지원으로 시작한 장애인 대상 프로그램도 참여자들이 자연과 제대로 관계를 맺고 지역사회 구성원으로서 자존감을 쌓으려면 3년은 걸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며 “대부분 공모 사업이 1년 단위로 끊어져 해마다 새로운 공모 사업을 찾아야 하는데 직원 얼마 없는 작은 조직에는 큰 부담”이라고 했다.
 

드림위드 사업을 주관하는 한국타이어나눔재단의 강혁 사무국장은 “주민 조직들이 스스로 지역 문제를 발굴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조직 역량을 키워 지속 가능한
모델을 갖추도록 돕는 게 드림위드 사업의 목표”라며 “드림위드 참여 조직 중 지역에 긍정적 변화를 만들어내는 곳은 중장기적으로 지원해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다이내믹로컬은 한국타이어나눔재단과 굿네이버스의 지역 활성화 사업인 ‘드림위드’ 사례를 소개하는 시리즈입니다.



[한승희 더나은미래 기자 heeh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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